피어보지도 못하고 정말 황망한 참사를 당한 영혼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참으로 마음이 아프네요!!!😢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새 땅과 새 하늘을 바라보고, 그 땅이 있음을 확신하고, 그 땅의 새 사람임을 선포하고
살아야 한다는 목사님주일말씀이 생각납니다.
저 같이 게으른 한 영혼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기다리시는 그 은혜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하나님 성품을 닮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구별된 삶을 살기 위해 힘써야겠습니다.
자꾸만 힘들어지는 이 세상이지만, 그래도
주님이 주신 주어진시간 . 거룩함과 경건함으로
살기위해 애 써야하겠습니다!!!
-------- 그런데요 주님!! 왜 생각과 행동은 일치가 안될까요?
-------왜 이렇게 게으를까요??
----------정말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저도 아주 오래전에
글 쓰신 분과 같은 생각을
꽤 오랫동안 한 적이 있어서
충분히 공감이 됩니다.
그러나 글 쓰신 분과 같이
매일의 삶 속에서 말씀을 붙잡고
진정성을 가지고 자신을 성찰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소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한 가지를 정하여
그 것을 '꾸준하게','농사' 짓는다고 생각하고
해 보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작은 식물을 하나 키운다 거나
아주 작은 동물을 하나 키운다 거나
아주 정말 간단한 운동 루틴 같은 것이나
하루에 한 문장 좋은 말씀 한 구절 모으기 같은 것이나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지 않는 것 으로요.
다만, 내가 그것을 좋아하는 것 으로요.
다만, 꾸준히 할 수 있는 것 으로요.
도움이 되실 거라 생각합니다.
'농사'는 오늘 씨 뿌렸다고
내일 열매를 얻는 것이 아닌
게으를 수 없는 꾸준한 '수고'와 '노력'이 들지만
시간이 흘러 열매 맺을 때가 되면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거둬들이는'
확실한 결과가 있으니까요.
그 어떤 것이든 좋으니
건전하고 즐거운 아이템 하나를 찾아서
'작은 농사'를 지어 보세요.
살다 보니 그렇더라구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보기만 해서는
답을 찾을 수가 없더라구요.
나를 위해 살려고 하면
그 노력이 때로는 결국 좌절로 되돌아 올 때
포기하게 되지만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살려고 하면
그 노력이 때로는 결국 좌절로 되돌아 오더라도
포기할 수가 없더라구요.
제 스스로가 게으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제 스스로가 의지력이 강해서가 아니라
힘들어도 결국 참아지고
눈물 흘려도 결국 닦아내고
쓰러져도 결국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 것이 제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소중히 지켜야 할 사랑하는 이를 위한 것이어서
가능한 일이 더라구요.
그 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가 의롭거나 효용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십자가를 참으신 것처럼
우리가 무언가를 견뎌내고 이겨내는 것은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어떤 존재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더라구요.
'진심으로 사랑하는' 어떤 존재가 있으신가요?
그 '진심으로 사랑하는' 그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를 위해 '내가 해야 할 매일의 수고'가
힘들어도 감당이 되더라구요.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이지만
그 사람을 결정 짓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인 것을 되새겨 봅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그것으로 '행복'을 얻고 싶어 하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구요.
오히려, 자신이 아닌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위해
'생각'하고 '행동' 할 때,
그것이 서로를 위하게 될 때,
'깊은 행복'을 누리게 되더라구요.
오늘, 사랑하는 무언가와, 누군가와, 그리고 주님과
데이트를 해보세요.
10분도 좋고, 한 시간도 좋고, 하루 종일도 좋아요.
물리적인 시간과는 상관 없이,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는 그 기쁨의 시간은
'게으를 틈'없이 밀도 있는 삶이 되실 겁니다.
왜냐하면 사랑하고 계시니까요.
저는 제 첫 아기를 품에 안을 때의
그 '찰나'의 시간에서 '영원'을 느꼈습니다.
그 짧은 순간, 무한한 책임감과 숭고함의 깊이에 들어 가더군요.
그 순간 만큼 저는 제 자신의 모든 게으름과
제 자신의 모든 인격적 연약함을 잊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제 자신의 그런 것들은
더 이상 전혀 중요한 문제가 되질 않았거든요.
오직 제 앞에, 제 품에 안긴,
그 여리고 소중한 갓난 생명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과 숭고함 앞에 섰을 때,
삶의 우선 순위가 '나'가 아니라
'너'가 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 '나 자신의 문제'에 가라앉아 있지 말고
오히려 자신으로부터 눈을 돌려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생각'하고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행동'할 때
오히려 '나 자신의 문제'가 사라져 버리는 것을 경험합니다.
결국 인간의 답은 '사랑'에 있으니까요.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니까요.
오히려 글쓴이께서 더 깊은 묵상과 경험과 통찰로
고민하시고 쓰셨을텐테
주제넘게 말씀드리다보니 주절주절 사족이 길어졌습니다.